도서관이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도서를 모아둔 건물이 된다. 도서란 원래 ‘하도락서()’를 줄인 말로서 《역경()》 <계사전()>에 있는 “하출도 낙출서 성인측지( )”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동양에서 도서의 개념은 그림이나 글씨를 비롯한 기록()에서 시작되었고, 서양에서는 기록을 실은 재료 ·수피() ·파피루스 따위 물질의 이름에서 전화()하여 자료()라는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도서관을 자료의 집적(), 도서의 보관장소로 생각한다면, 그 기원은 아마 문화의 발상과 거의 맞먹을 만큼 오래 된다. 즉, 문명발상의 고장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던 바빌로니아의 수도 니폴의 사원() 자리에서 설형문자()를 새겨넣은 점토판()이 발견됨으로써 BC 21세기경의 옛 도서관 자리가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또, 1850년 영국의 고고학자 A.H.레이어드니네베 발굴에 의하여 고대 아시리아아슈르바니팔왕의 도서관 유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여기에는 약 1만 이상의 문서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도 이집트 문자를 새긴 많은 점토판이 발견되고 있는데, 라메스 3세의 궁전에는 ‘영혼의 요양소’라고 적은 곳이 있었다는 시칠리아 사가()의 기록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도 BC 수세기부터 원시적인 도서관이 존재하였는데, 정치가 피시트라투스, 수학자 유클리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등은 많은 장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BC 3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왕조의 비호 아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건립된 소위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는 최성기에 약 70만 권의 장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무렵의 도서는 나일강() 유역에 자라고 있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을 종이처럼 납작하게 다져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이보다 좀 늦게(BC 3세기∼BC 2세기) 존재했던 소()아시아의 페르가몬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 필적하는 대규모의 것이었는데, 이 지방에는 파피루스가 생산되지 않는 데다가 프톨레마이오스왕조가 이집트의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하였으므로, 양피()로 된 도서를 간직하였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볼 만한 도서관이란 거의 없었고, 제왕() ·귀족 사이에 신분의 상징으로서 도서의 수집이 이루어진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로마공공도서관을 건립하도록 제안했다는 문서도 있다(가짜 문서라고도 함). 로마에 공공도서관이 출현한 것은 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서였다고 하나, 로마의 사가() 플리니우스에 의하면 로마에 처음으로 공공도서관을 설립한 사람은 G.폴리오라고 한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의 파라틴 언덕에 도서관을 설립하였고, 그 후의 제왕이나 총독들도 이를 본받았으므로 로마제국의 판도에는 각지에 도서관이 세워지고, 시민들은 자유로이 이를 이용하였다. 4세기에는 로마에만도 공공도서관이 28개관이 있었다. 고대의 도서관은 정무() ·제사() 등을 행하기 위한 기록보관소적인 성격이 강하였고, 학자 또는 사제에 의하여 관리되었다. 그 후, 게르만민족대이동으로 중세 초기에는 도서관이 거의 파괴되었으나, 다시 그리스도교 각파의 수도원이 여러 곳에 세워지면서 종교서적이나 고전() 등이 수집되었다.

따라서 유럽 중세의 도서관은 매우 엄격한 선서()와 결부된 폐쇄적인 것이었다. 중세의 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수도문고()의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수도원에서의 사본()사업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사본사업으로 과거의 문화가 보존 ·전승되어 르네상스의 개화에 이바지하였으며, 수많은 고전을 오늘날 우리들이 접할 수 있도록 전하여 왔다. 유럽 각지의 그리스도 교회에는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부속학교가 설립되었는데, 12세기경부터는 이들 부속학교가 분화하여 소르본처럼 교회에서 독립한 대학이 속출하였다. 이러한 대학은 모두 학술연구를 위한 도서관을 두고 문헌의 수집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학술 ·전적()의 동서교류, 수도사()들의 가두진출, 대학의 발흥, 봉건제도의 퇴조(退) 등은 개방적인 사회를 출현시켜 르네상스를 가져왔으며, 인쇄술의 발명, 신대륙의 발견, 합리주의와 과학정신의 대두는 당연히 도서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K.케스너, G.W.라이프니츠 등의 서지학자 ·도서관인의 노력으로 도서관의 수서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큰 도서관의 설립도 잇달아 이루어졌다. 즉, 마자랭도서관 ·프랑스 국민도서관 ·대영박물관() ·바티칸도서관 등이 이 무렵에 생긴 것이다.

미국에는 1731년 B.프랭클린이 회원제 대출도서관인 필라델피아 도서관회사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은 근대 공공도서관의 원형으로서 도서관사상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 1848년에는 보스턴시()에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도서관이 설립되고, 54년에는 처음으로 시민 전체에 무료로 개방하는 공공도서관이 출현하게 되었다.

출처 : http://100.naver.com/100.nhn?docid=48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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